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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11월의 잔영2017-11-20 18: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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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자락이자 겨울의 초입인 11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곳 아리조나는 아직도 한 낮에는 여름의 열기가 남아있지만, 가을날의 단풍과 낙엽들, 그리고 이맘 때쯤에 고국에서 보곤 했던 시골 농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노란 감을 떠 올리며 성큼 한 해가 지나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내에게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해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현직 여성목회자로서 당시에 한국엽합회에서 여성전도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아내의 교통사고후 오랜 투병기간이었던 그 시절에 종종 밤 늦은 시간에 어린 딸과 함께 병실을 찾아와 병원 복도의 끝 소파에 아내와 함께 앉아서 어두어진 창밖을 등지고 오랜 시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 때에 그 친구와의 늦은 시간 정담은 아프고 힘들었던 아내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 입니다. 잊을 수 없을 만큼 기억에 뚜렷히 남아있고, 늘 부러운 친구의 모습이었습니다.


연초에 오랜 지기였던 벗이 갑작스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지연이나 학연으로 연결된 적이 없지만, 교고 학창시절 교회 학생회에서 만나 함께 활동하며 더불어 성경공부를 하고 1982년 봄날에 함께 침례를 받았었습니다. 준수한 노래실력으로 연극도 잘하고 운동에 재능있던 그 친구는 대대로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성장했었지만, 뒤늦게 신학을 택해서 늦은 나이에 목회의 길을 걸었습니다. 큰 덩치에 걸맞지 않게 조용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다들 목사로서의 삶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고, 근간에는 필리핀에서 헌신적으로 선교활동을 하던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구정 직전에 한국 귀국길에 공항에서 갑작스레 쓰러져, 사랑하는 가족들과 믿음의 형제들을 두고 먼저 눈을 감게 된 것 입니다.


소식을 접했던 날, 그동안 그 친구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입영하던 겨울 날 기차역에 배웅을 나와서 함께 기도해 주었던 일, 결혼식에 사회를 보아 주며 환하게 축하해주던 젊은 날의 모습들이 생각났습니다.

우리의 학창시절과 교회 청년회 활동의 기억들. 그리고 지난 한국 방문때 여러 친구들과 더불어 그 친구집을 방문해 늦은 시간까지 정담을 나누었던 추억들이 밀려와서 하루종일 일손을 놓고 멍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허탈함과 무력감으로 침대에 걸터 앉아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여름에 어느 목회자의 사모님의 부고 소식을 갑작스레 접하게 되었습니다.

헌신적이고 자상한 품성으로 많은 교우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았던 분이였기에 슬픔과 아쉬움은 더욱 컸습니다. 그 분은 70년대초 이모님 댁에 놀러가서 그 곳에서 열리고 있던 여름성경학교에 출석했다가 당시 성경학교장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단발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자건거를 타고 다니면서 씩씩하게 봉사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때의 소탈함과 헌신적인 모습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분은 후에 제가 다니던 교회의 청년전도사와 결혼하여 목회자의 아내로서 줄곧 겸손한 모본의 삶을 사셨음을 기억합니다. 그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 분과 함께 소식을 나누던 페이스북의 지난 글들을 보며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간에서는 착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곁에 빨리 두고 싶어서 일찍 데려가신다는 말로 위로를 하지만, 고인의 유족들이 느끼는 슬픔과 허전함을 우리는 다 헤아리기 어려울 것 입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더욱 단단해져야 함에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과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 보내는 일들은 여전히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다치거나 아플 때마다 이를 걱정해주고 함께 밤을 세우시던 부모님의 손길이 있어서 그 고통이나 상처가 곧 끝나고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항상 있었습니다. 곤란한 상황이 생겨도 지인들의 격려가 주변에 늘 있어서 긍정적이고 희망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당면하는 고통과 슬픔때문에 절망하게 되는 경우가 더욱 자주 일어나고, 아픔과 고통이 극복되리라는 기대에 앞서 섭리에 순응하며 이를 자연스레 받아 들여야 하는 일에 익숙해야 하겠지만 쉽지 않습니다. 자부심이 강했던 청소년기때 처럼 우리 스스로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던 시절에 가졌던 자신감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2017년의 가을.

신앙안에서 가장 절친했던 오랜 벗과 훌륭한 품성을 유산으로 남기신 옛 성경학교 교장선생님을 떠나 보내고서도 어제와 다를 바가 없는 오늘을 살아가며 부질없는 현세의 행복과 근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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