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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15. 구원의 신분과 수준 2017-07-12 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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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들이라는 신분이 있고 아들답게 행동하는 태도(수준)가 있습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났느냐 흙 수저 물고 태어났느냐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의 신분은 은혜(믿음)로 얻는 것 입니다. 왕자가 되었으니 왕자답게 처신(행동)하는 것은 왕자의 위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자가 십계명을 준수하고 산상보훈을 마음에 새기고 복종하려는 자세는 하늘 아버지께 지극히 영광(5:14-15)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16 17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6:40).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버리고 자기 업적(열매들)을 잔뜩 들고 와서 우리가 행하지 않았습니까?”(7:22)라고 우기는 자들은 가라지입니다. 이들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남이 없는 껍데기 신앙이고 짝퉁 신앙입니다. 그런데 더 분간하기 어려운 짝퉁 유사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구원의 자격을 믿음과 행함으로 말하는 반반신앙(半半信仰)입니다. 행위를 들고 나온 자들이 왜 짝퉁이고 폐품일까요? 이들은 예수께서 이루신 완전한 속죄를 부정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자기 행위를 더해야 한다는 것은 십자가만으로는 속죄가 부족하다는 뜻이니 이것은 십자가를 폄하하는 것이요, 주께서 정하신 구원의 계획에 수정을 가하는 일입니다. 모르고 그랬다면 깨닫고 고치면 되지만 분명한 진리를 말해도 고집으로 부정한다면 그는 스스로 속는 것이요 예수님의 죽음을 헛것으로 돌리는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2:21; 3:18)

교회지남 2017년도 5월 호에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과 하나님의 요구가 삶에서 온전히 융합되는 데서만 가능하다27는 글을 보았습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2:13)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의 융합을 말하면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나의 순종이 아니라 한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다’(5:19)는 말씀에 의하면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라는 말씀은 의인됨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듣기만 하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하는 의인의 모습을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율법을 행하는 것은 의인됨의 조건이 아니라 의인의 모습입니다. 만일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의인의 조건이라면 그것은 믿음(선물)과 하나님의 요구를 이룬 삶(순종, 헌신, 굴복, 품성변화)을 재조사해서 구원의 자격이 결정된다는 말이니, 그것은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다는 말씀에 반한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혜인 동시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의 융합으로 이루는 것이 구원이라는 가르침은 짝퉁 복음입니다.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의 모습을 보이게 되지만, 그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오직 성경에 근거한 재림신앙과 1844>를 지은 클리포드 골드스틴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14:12)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심판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이 소유한 성품을 묘사한 내용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명에 순종하고 예수 믿음을 갖는 것 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없다193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는 말씀을 잘 뜯어보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음을 가진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인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계명을 지키는 것이 성도의 조건이라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은 조건을 충족시킨 결과에 지나지 않으며, 십자가는 인간의 행위의 보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순종이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순종이 구원 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결국 순종해야 한다면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종을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하 는 사람과 순종을 사랑하는 마음에 따라오는 모습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의 이 다릅니다. 구원을 선물로 알고 감사하는 자는 기 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만, 순종이 구원의 조건인 사람 에게 계명은 심히 어려운 법조문이 됩니다.

율법주의 운운하면서 안식일 문제를 따지면 안식일 교인들이 말 하는 단골 답안은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 았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킨다는 안식일 교인에게 구원을 받았느냐?’ 고 물어보면 먼저 조사심판이 머리에 떠오르는 겁니다. ‘라고 대답하려니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조사심판 교리의 문제점은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눈을 자기에게 돌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한 낙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무한한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데 있습니다.

 

 

 

B. 믿음과 행함은 반반 신앙이 아닙니다.

완전한 신앙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총각은 반편이라 하여 바보에 비유한 것입니다.

모자란다는 뜻입니다.

처녀총각이 결혼하면 비로서 완전한 사람이 됩니다

믿음만을 주장하거나 행함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이 반반신앙입니다.

모자라는 신앙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부부와 같습니다.

반듯이 아내가 있어야하고 반듯이 남편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행함의 융합 취지를 부정한다면

부부생활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배필을 주셨습니다.

결혼 후 아이를 임신했다면 임신한 순간을 잉태했다고 말합니다.

구속의 경륜을 믿는 순간 구속이 끝났다고 말한다면

단번에 잉태했다고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천지창조와 재창조는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이 두 가지를 분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착한 신앙이 아닙니다

믿음과 행함을 설명하는 방법이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성소의 울타리입니다.

울타리는 성소 전체의 인감증명입니다.

울타리는 재산의 범위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울타리안은 나의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인감증명인 울타리는 세 가지 융합으로 이루어 집니다.

지주,

세마포,

은고리입니다.

지주를 한국의 농사꾼들은 말뚝이라고 말합니다

놋으로 된 지주는 예수를 상징합니다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 즉 행위를 상징합니다.

은고리는 믿음을 상징합니다

이 세 가지가 있어야 울타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주에 달린 은 고리는 세마포를 붙들어 매기위해서입니다.

세마포, 즉 옷감은 혼자의 힘으로는 일러설 수 없습니다.

옷걸이가 있어야 옷의 맵시를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마포는 지주가 있어야 합니다.

포도나무의 비유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우리도 없습니다

이 세 가지는 내가 나됨을 증명하는 인감증명과 같습니다.

번제단으로부터 지성소 까지 성화의 과정은

사람 됨됨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소봉사의 과정은 성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임신 후 10달동안 배속에서 사람이 사람일 수 있도록

자라게하는 과정의 축소판입니다.

성소안에서 죄인이 성화된 다음

지성소에서 의인으로 인정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소는 구원 받을 수 있는 과정을 설명한 구원의 신분과 수준입니다.

세마포(행함)

은고리(믿음)에 의해

지주(예수)에 매 달려야합니다.

나의 행위와 나의 믿음은 예수에 의해 인정을 받는

증명서와 같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증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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